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도토리묵밥] : 뿌리, 품질을 가르는 비밀, 힘이 되는 음식

by angelmom1 2025. 5. 11.

1. 뿌리

묵밥
묵밥

도토리묵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어린 시절 외갓집 마당 풍경이에요. 가을이 깊어지면 동네 아이들이 산으로 몰려가 도토리를 주워 오곤 했죠. 그땐 도토리가 얼마나 귀한 식재료인지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한 알 한 알이 참 소중했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됩니다. 도토리는 그냥 먹으면 입안이 바짝 마르고 떫은맛이 너무 강해서 어른들이 꼭 “그냥 먹지 말고 물에 담가서 떫은맛을 빼야 한다”라고 신신당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할머니는 커다란 소쿠리에 도토리를 담아 맑은 시냇물에 며칠씩 담가두셨어요. 아침마다 일어나면 할머니가 소쿠리를 들고 시냇가로 가서 도토리를 씻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물을 갈 때마다 도토리에서 누런 물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먹을 수 있나?’ 싶기도 했지만, 그만큼 도토리묵은 귀한 음식이었죠. 옛날에는 흉년이 들거나 쌀이 부족할 때 도토리묵이 밥상을 지키는 유일한 구황식품이었어요. 할머니가 “도토리 가마니만 있어도 겨울이 든든했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쌀밥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었고, 평소에는 도토리묵이나 감자,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많았다고 하셨죠. 도토리묵을 쑤는 날이면 동네 어른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손을 보태곤 했습니다. 묵이 완성되면 투명하고 탱글탱글한 모습에 모두가 감탄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 도토리묵 한 그릇은 가족의 건강과 안녕을 지키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죠. 요즘은 도토리묵밥이 건강식이자 별미로 대접받으니, 세월이 참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엔 생존을 위해 먹던 음식이 이제는 일부러 찾아 먹는 보양식이 되었으니 말이에요. 도토리묵밥 한 그릇에는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흔적, 그리고 가족을 위한 정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2. 품질을 가르는 비밀

도토리묵밥을 자주 먹어도 도토리가 다 같은 도토리가 아니라는 건 잘 모르는 분이 많아요. 외갓집 뒷산에는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졸참나무 등 여러 참나무가 있었는데, 할머니는 꼭 상수리나무 도토리만 골라 따셨죠. “상수리나무 도토리가 전분이 많고 떫은맛이 덜해서 묵을 쑤면 훨씬 부드럽고 고소하다”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도토리를 까고 맷돌에 갈아 찬물에 담가 떫은맛을 빼는 과정은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에요. 하루에도 몇 번씩 물을 갈아주고, 손끝으로 도토리 앙금을 살살 저어주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앞에 선합니다. 묵을 쑤는 날이면 커다란 놋솥에 도토리 앙금과 소금을 넣고 나무주걱으로 쉬지 않고 저어야 해요. 팔이 아플 법도 한데, 할머니는 “묵은 정성이야” 하시며 땀을 닦으시곤 했죠. 묵이 끓으면서 퍼지는 고소한 냄새가 집안 가득 번지면 아이들은 벌써부터 군침을 삼키며 묵이 굳기를 기다렸습니다. 묵이 완성되면 넓은 쟁반에 부어 식힙니다. 투명하게 빛나는 묵 표면을 보면 괜히 뿌듯해지고요. 묵을 썰 때는 너무 얇지 않게 한입 크기로 썰어야 식감이 살아납니다. 콩나물은 살짝 데쳐 아삭함을 살리고, 김치는 송송 썰어 준비합니다. 여기에 지단을 곱게 부쳐 채 썰고, 오이와 쪽파, 청양고추를 송송 썰어 고명으로 올리면 색감도 살아나죠. 양념장은 진간장에 다진 마늘, 다진 파,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잘 섞어 만듭니다. 밥 위에 살짝 얹으면 간이 딱 맞고 김치와 어우러져 감칠맛이 배가됩니다. 육수도 대충 내지 않아요. 멸치와 다시마는 물론 무, 양파, 파뿌리, 건새우까지 넣어 푹 끓여야 비린내 없이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이 육수가 묵밥 맛을 좌우한다는 걸 할머니 밥상에서 직접 배웠습니다. 도토리묵밥을 먹을 때는 뜨거운 육수를 넉넉히 부어 밥과 묵, 고명이 잘 섞이도록 숟가락으로 휘휘 저어 먹는 게 포인트입니다.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부드러운 묵과 고슬고슬한 밥, 아삭한 콩나물, 칼칼한 김치, 고소한 김가루와 참기름이 어우러져 입안 가득 건강한 맛이 퍼집니다.

 

3. 힘이 되는 음식

도토리묵밥이 건강식이라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먹어보면 그 이유를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저는 속이 더부룩하거나 기름진 음식을 먹은 다음 날이면 꼭 도토리묵밥이 생각나요. 도토리묵에는 떫은맛의 주성분인 탄닌이 많아서 몸속 노폐물과 중금속을 흡착해 배출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는 “묵밥 먹으면 속이 편하다”며 늘 아침 식사로 내주셨습니다. 실제로 도토리묵밥 한 그릇이면 포만감도 오래가고 소화도 잘되어 하루를 든든하게 시작할 수 있었어요. 요즘은 도토리 효능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어 간 해독, 혈관 건강, 변비 개선, 심지어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니, 예전 어른들의 지혜가 새삼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도토리묵밥은 단순한 한 끼 식사가 아니라 자연이 준 건강과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음식입니다. 한 숟갈 뜰 때마다 느껴지는 담백함과 구수함, 그리고 속까지 편안해지는 느낌은 직접 만들어 먹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지요. 요즘처럼 건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대에 도토리묵밥은 웰빙 음식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인공 조미료 없이 자연 재료만으로 깊은 맛을 내고, 각종 채소와 곡물, 해산물까지 한 그릇에 담아내니 영양적으로도 완벽하죠. 특히 가족들과 둘러앉아한 그릇씩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면, 음식이 주는 따뜻한 정과 소박한 행복이 절로 느껴집니다. 도토리묵밥 한 그릇에는 자연과 정성,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